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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을 모르면 우리나라 가정 나라는 망한다

정치적인 셈이야 어찌 되었건 자식들은 자란다. 어른이 되어 피가 튀겨도 어려서는 더없는 우정을 선물해야

요새는 환갑잔치을 한다는 소식이나 동네에서도 환갑잔치을 준비하는 계모임도 사라진것 같다.동네사람들끼리 계모임을 한다는 소리도 못들었다.아니 내가 동네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서 일까

아버지가 돌아가셧을때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때도 이상하게 동네사람들이 오지을 않았다.아버지나 어머니는 조산원을 하느라 동네계모임이 많앗다.



아버지는 건설업을 하기에 인부들에서 각종 기술자의 전화번호을 알아서 나 국민학교나 중학교때는 집에 오시면 씻으시고 집에서 일할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일이었다. 아버지에게 세수대야에 물을 떠다드리고 발 수건을 가져다 드리고 하면..요새는 발수건이 안나온다.샤워 문화가 발달해서 인지 아파트 문화가 발달해서 인지 모르겠다.



어미니는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좋은 자재로 일을 해서 이문을 남들보다 많이 남기지 않아서 문제라고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건물을 실재로 지었는지 요새는 의문이 간다.어려서 아버지가 부산의 건축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본적이 있다. 아버지가 일을 배우시던 ?인지 정확하지가 않다. 밧데래 공장을 했다는데 목포에서 부산으로 이사을 간 것도 이상하고 다시 안양으로 이사을 간 것도 이상하다.여동생이 부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기을 아버지는 젊어서 간이 안좋아서 흑산도에서 뱀을 잡아먹고 간이 낳으셧다고 했다.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몸이 피곤해서 건강검진시에 초음파 검진을 햇더니 지방간이 있다고 나왔다. 혹시 잘못된 진단은 아니었을까싶기도 한다.어머니가 대한가족꼐획협회에서 의료사고로 그만두시고 나중에 서울의 근방에 조산원이나 병원에서 일하셧다. 젊은 의사을 다 가르졌는데 집에서 자고 잇는데 산모가 위험하다고 해서 가보니 벌써 산모의 상태가 안좋아서 응급처치을 하고 을지대학교 병원인가로 옮겼는데 산모가 죽었고 벌써 서로 의견을 조율해서 어머니가 다 뒤집어 썼다고 한다. 그래서 법원을 수차례 불려다니는데도 아버지는 잠만 쿨쿨자더란다.네기 님편이 번듯한 직장이 있고 자식들이 끌끌해봐라 그런 누명은 안쓴다.



요새 대전에는 산부인과에서 애을 받지 않고 여성들의 건강에 만 진료하는 산부인과 들이 증가하고 있다.아무리 의사라해도 경험없이는 애기을 받기가 힘이 든다.간호사들도 마찬가지다. 어머니의 첫 애기인가 간호학교을 다니면서 둘째어니의 애기을 받앗다고 한다. 장윤옥이라고 고양시인가 경기도 교육청인가 어느 학교에 교감인가 교장으로 정년퇴직했을 것이다.순천에 간호전문학교 기숙사가 있어서 순천시내에 있는 작은 언니네 가서 애기을 보기도 했다고 한다.영화을 같이 가서 보고 오면 조그만 애가 영화본 것을 곧잘 이야기햇다며 어머니가 이야기 하셧다



나도 내딸이 태어났는데 난 남동생 애들을 돌봐서내딸이름보다는 조카들의 이름이 더 부르게 되고 딸이름을 불러야 하는데 조카들의 이름을 부르고 부산에서 임신해서도 애기을 낳고 부산에 가잇으면서도 대전태평동 동사무소에 전화을 걸었다. 모라동 동사무소에서 말이다. 조카들에 대해서 묻고 말이다.



어머니는 말씀하셧다.아버지가 33세에 나을 낳으신것은 그당시에서는 굉장히 늦게 애을 갖으신것이라고 말이다. 어머니가 26세에 애을 낳으신것도 그당시에서는 애을 너무 늦게 낳으시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내가 태어나자 목포 선창가에서 잔치을 벌였다고 한다.한데 무슨일이 잇엇던 것일까밧데리 공장이 안된 것인지 어떻게 해서 부산으로 간 것인지 이야기을 안해주셧다. 삼학도에서 나을 엎고 죽으려고 햇는데 어떤 분이 어찌된 일인지 사정을 묻고 ...그러다가 집에 돌아갓다고 했다. 어머니가 너하나 보고 산다고 하셨다. 그리고 무엇인가 해보려 하면 무조건 밀어부치라고 이야기하셧다.



한데 어느 순간 변하셨다.아버지는 돌아가시기전에 묻도 싶은 것이 있어 물어보려고 했는데 말을 안하셨다.단지 아버지 환갑을 앞두고 해남에 가니 둘쩨고모가 할아버지 이야기을 하며 대한청년회회장도 하고 돌봐준 사람도 많다고 ...아버지 고등학교 동창이 그당시 해남에 국회의원이 되엇다고 난리나셧다. 아버지가 사람이 좋아서 말은 그렇다. 학교에 도시락도 싸가지고 가서 친구들에게 주고 해남에 어느 윤씨라고 햇는데 아버지가 많이 도와주었다고 햇다.



어려서 광주에 어느 어려서 굉장히 큰집에 바깥채에 할머니가 잠시 기거하던 곳이 생각이 난다. 그 집주인이 할아버지와 의형제인가 해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도와주셧다고 한다. 한데 의문점이 많다. 어머니 말로는 할아버지가 화병으로 술을 마시고 돌아가셧다고 한다. 육이오때 전쟁인가 피난을 다녀오니 부엌에 그릇들도 하나도 없고 아마 이불채도 없어진것은 아닌지....



고모는 그 지역에서 여성단체에 회장인가을 하셧다고 한다. 보험도 하시고...아마 할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을 안해주셧다면 잘 몰랏을 일이다.여관을 햇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을 햇는데 잡지에서 보니 우리나라 시골 여관은 작은 집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버지가 어렴풋이 이야기 하기을 물을 나르고 화단을 가꾸고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요리을 더 잘 하신다. 중학교때 내가 입학을 하자 도시락을 싸주시는데 아버지가 계란말이을 해주셨다. 간 고기와 야채가 들어간...어머니는 못하시는 음식이엇다. 아버지가 아산만 공사로 돈을 못받자 그때 사업자금을 막내고모 시댁에서 빌렸었다고 한다 .내가 중학교떼 우리 집에 고모가 와서 불고기을 하는데 당근을 그냥 썰지 않고 예전에 중국식 탕수육에 들어가듯 동그란 당근에 약간 모양을 내서 불고기을 볶았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이야기을하며 최씨 문중에 음식을 이야기하셧다. 그런데 육전을 하는 방법은 아마 최씨 문중이었을테이지만 고등학교때 둘째 고모가 우리집에 와서 돼지고기 간것에 그냥 달걀을 넣고 동그란 전을 숟가락으로 떠서 부?다. 어머니는 돼지고기을 칼로 다?아서 동그랗게 빚어서 밀가루을 부치고 계란물을 입혀서 육전을 하는데 여간 손이 가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있는 집안으로 자식을 보낼 것이라고 이야기 햇다. 시집을 가서 보니 집안에 어른이 없어서 인지 속옷을 입고 돌아다?다고 한다. 그리고 아침에 일찍일어나는 사람. 오전에 늦게 일어나는 사람 ...아침을 여러번 채렸다고 한다. 어머니을 그래도 챙겨주신분들은 할머니에 외사촌들이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시집살이가 곤단햇던 것은 집안일을 시집가기전에 해보지 않아서 더 힘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는 집안일을 알아야 한다고 나에게 김치을 담으면 마늘을 까라고 하고 쪽판 한단을 다 다듬으라고 햇다.



옛날에는 김치을 담으려면 빨간고추을 맷돌 비슷한 것에 직접 갈아서 그것을 갈고 나면 손이 화닥거렷다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쉬고 싶은데 할머니가 나을 업고 나가면 저녁이나 돼서 들어왓다는 것이다. 그럼 젖이 불어서 탱탱해져 아프단다. 그리고 내가 잘 울었으면 할머니가 나을 업고 집으로 돌아왔을터인데 난 너무 순해서 울지도 않앗다고 한다.



아버지는 나이가 드시면서 절을 다니셨다. 한데 어머니 말로는 청년시절에 교회에서 청년부에서 일도 하시고 피아노도 쳤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피아노가 치고 싶어서 교회에 간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든다. 살아계셨다면 90이 넘으신 나이다. 그나이에 여관을 할때 피아노가 있엇던 것인지...아버지 고등학교 선생은 길에서 우연히 만나서 아버지가 음악을 안해서 울었다고 한다.어머니는 할머니을 욕하셧다. 아들을 가르쳐야하는데 가르치지 않고 사업을 시키은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1950년대에 사업을 하면서 총을 들고 다니셧다고 하셨다. 그래서 취기에 하는소리거니 하고 생각을 햇다. 한데 한국기업 30년사등을 읽고 동영상을 보니 1950년대와 1960년대는 ...버스사업하는 남해안에는 야쿠자가 있어서 운송업이 배짱이 없으면 어려 웠다고 한다.



아버지는 조카들에게 잘 해주었다는데 내가 고등학교떼 진숙이라고 큰 고모 딸이 애기을 업고서 한번 찾아왓었다.큰고모나 둘쩨 고모의 자식들을 귀여워 햇다고한다.아버지는 그당시에 밀수도 했다고 햇나>어머니는 밧대리공장을 아버지가 햇지만 아버지는 집에 가끔씩 들어왓다고 한다. 해안가을 돌아다니셧다고 한다.그당시에는 어떤 배인지 배에 밧데리을 대는 일이라고 햇다.회사가 망했다면 밧데리값을 못받은 곳도 많았을 터인데 ...



어머니가 이런 말을 하셧다. 일을 하는데 누군가가 카운터에 앉아서 장부도 정리하고 손님도 맞이 하고 했어야 하는데 자리을 지키는 사람이 없이 돈함은 돈을 꺼내가는 사람이 임자 엿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회계장부가 사라지고 있다. 일반식당에는 카운터에서 앉아서 돈을 계산하는 사람이나 손님에게 어서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인사하는 사람도 사라?다.암웨이 하던 친구가 그랫다. 일이 마감이 되면 그 시간에 맞추어 가게을 도는 것이 일인데 암웨이을 하니 기계에 넣기만 하면자동으로 장부가 정리가 되고 회사에서 맡아서 해주니 너무 편하다고 말이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국민학교 입학하시기전에 돈을 벌어서 집도 사고 서울 광화문에 식당을 냈는데 아버지 외가 친척에 맡겨두었는데 그 친척이 다 말아먹었다고 한다. 손씨다.아마 손열용이 삼촌을 이야기 하는 것인지....어려서 한번 가본기억이 어렴풋이 있다.이때 아버지가 회계장부을 잘 안보신 것인가



어머니 이야기로는 약간 말이 안맞는다. 동아건설인가 어느 건설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회계장부가 없어?는가 햇는데 아버지가 어느 정도 기억을해서 회사을 살렸다고 햇나 잘 기억이 안난다.

식당에서 일을 해보니 아침에 식자재들어오는 것도 체크을 해야 하는데 주인이나 부장들도 식자재가 들어오는 날에 아침에 일찍나와 체크을하는 것을 못봤다. 예전에 방송이나 잡지을 보면 백화점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가게에 좋은 식자재을 위해서 아침에 새벽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서울에 백화점의 식품코너매니저들은 김장때가 되면 전국에 좋은 배추와 무우등을 구하기 위해서 돌아다닌다고 햇다.킹덤에 아침에 과일이나 식자재가 들어오는 데 체크리스트도 없고 얼마라는 리스트도 없이 일꾼들이 와서 그냥 냉장고에 물건을 확인도 안한 상태에서 입고 한다.그래도 주말에 매출이 억을 넘어선다. 깜짝 놀랬다.



어머니에게 일억만 있으면 모텔사업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햇다가 식당을 보니 눈이 돌아가는데 한심한 것은 식자재 관리에 너무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이곳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식자재회사들이 그냥 물건만 놓고 간다. 검수도 없이 .딸이 초등학교 다닐때 급식에 검수을 하는 봉사활동에 갔는데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 먹을 김치나 양파 반 인스턴트 식품등을 일일이 확인한다. 그래서 알앗다. 요즘 애들이 생김치을 안먹고 김치공장에서 만든 반은 익은 김치을 먹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집에서 김치을 담그었다. 어머니가 메르스 때 가슴수술을 하고 난 후브터 김치을 내가 담그었다. 그전에는 어머니가 김치을 담으면시장에 가서 배추나 무우등을 같이 사거나 혼자서 사가지고 왓었다. 그러면 말이 많다.잘 사왓는지 못사왔는지...동네에 세계로 마트라고 딸친구부모가 하는 마트가 있어서 그곳에서 호박을 사왔는데 집에서 어머니가 짜게보니 안에 애벌래가 많아서 어머니가 다시 가서 호박을 바꾸서 가져오라고 했다.



그가게은 딸에 의하면 딸 친구어머니가 과욕을 부렷다고 한다. 친구외할머니가 대출받아서 사업은 어렵다고 햇는데 시작을 햇다고 한다.그러더니 나중에는 애들을 데리고 어머니집으로 이사갓다고 한다.유천동에 탑마트에서 일을 햇다고 햇나 탑마트도 한다고 했나이번에 가서 보니 열무가 안좋다.



마트들을 보니 공산품이나 식품보다는 사람들이 채소나 과일등을 많이 사가기에 어머니에게 이야기햇다. 식당을 다니다가 너무 말도 걸고 상처을 받아 노은동 농수산물시장에가서 채소가게에서 판매일을 해보니 장사가 괜찮았다. 현금장사이고 재미도 있고 ...어머니에게 채소장사를 해볼까 했더니 어머니가 반대 했다.채소가게 주인에게 주말에 쉬고 싶다고 했다가 잘렸다. 장사는 주로 주말에 매출을 올린다고 한다. 그때는 애가 고2때였나 주말에는 학원을 안다니니 집에서 밥도 챙기고 말상대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그때 딸이 스트레스을 받고 있었다. 친구을 만나고 오는데 버스을 탈려고 앉아 있는데 버스도로에 아지랭이가 피어나고 걸어나갈 뻔 햇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친구정원이가 싱가포르로 여행을 간다고 나보고 베트남을 여행가자고 했었다.푸우꾹이라는 곳으로 말이다.이때 이 친구와 세이백화점을 갈려고 햇는데 세이백화점이 문을 닫아서 그주위에서 청소년이 갈 곳이 없어져 참 당황스럽다고 말이다. 세이백화점이 이 주위에서는 청소년들이 많이 가는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백화점을 돌고 식당에서 가서 식사도 하고 서대전공원에도 가고 말이다. 대전시청에 제안해서 이제안글로 상도 받았다. 그러나 대전시청에서는 서대전에 청소년센타가 들어선것이 아니라 구충남도청에 청소년을 위한 뭔가가 생겼다 .



아이가 오류동에 제일어린이집에 다닐때 그곳에 베트남애가 같이 다?다고 한다. 배트남 인사을 배워왔던가 기독교연합봉사회관 1층에 베트남 식당이 있었다.내가 애을 집에 맡기고 친구와 만나고 나서 여권과 부산사상에 도서관증과 스위스시계와 애기 아빠가준 목걸이을 잊어버렷다. 하얀백에 들어있었다. 그때는 식당 주인이 모른다고 햇다. 한데 17년인가 지나서 찾아가니 그때 베트남 알바가 있었는데 베트남으로 돌아갓다며 횡설수설을 햇다.옆에 시티은행은 국민은행으로 바뀌었다.



우리 큰 이모의 남편은 일정시대인가 19540년대 고등학교영어 선생을 햇는데 그다음에 잘 풀리지 않아서 큰이모가 어렵게 살앗다.딸이 나의 외할아버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랬다. 이렇게 잘생겼냐고 말이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스님으로 계시던 순천 쌍암사에 가자고 해서 난처해 져서 일파 만파로 사건이 더 커?다.추석때가 되면 외할머니 제사을 쌍암사에서 지내는 것으로 안다. 어머니가 추석때 마다 이십만원인가 십만원을 보냇던 것으로 안다. 올해는 누가 보낼까



어머니는 돌아가시기전에 제사도 합쳐야 한다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아버지 제사을 같이 지냇다.



작은 어머니을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작은 아버지도 공사일을 하시면서 돈을 잘 못받아서 고생을햇다고 한다. 새벽두시에 경찰을 앞세우고 돈을 못받은 집을 찾아가고 햇다는 것이다. 그리고작은 아버지는 목포상고을 나오서 장부에 그것을 다 적어놓아서 작은 어머니가 가지고 있다고 햇나



딸에게 그랫다 전산회계을 배우라고...현대정주영은 집에서 가출을 해서 젊은시절에 청량리 부기학원인가에서 부기인가 회계을 배웠다고 한다.진짜인지 지어낸 애기 인지 모르겟지만 쌀가게에서 일하면서 장부정리을 햇다는 이야기는 ....



메가커피에서 일하면서 그냥 일을 하지 말라고 햇다. 어떤 방법으로제조도 중요하지만 어떤회사에브랜드을 쓰는지 부터 매출이 어느정도인지 시간대별로 사람은 이런이야기을 하면 딸은 안좋아 한다.



어느 식당에서는 내가 잘린이유가 그 식당의 매출을 어느 정도 잡고 있는지 감을 잡아서 잘린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그냥 식당 주방보조라면 모르는데 주방에서 일하다보면 ...



지역지등에서 탐방기사을 쓸때 맛지에서 창간준비작업을하면서 식당 지배인이나 사장들에게 인터뷰한 내용 ..그때는 근로자들의 복지 여건을 배제했었다. 그리고카운터에 포스을 인식하지 않앗다. 앞으로 다가올 .....전기나 인공위성 송신이 전자파가 잘 닫지 않으면 우리의 계산기는 작동을 안하고 카드도 인식을 안한다.그리고 포스에도 미용실이나 슈퍼나 식당에 프랜차이즈에서 어?게 설계을 하고 어느 나라 인공위성의 수신을 받느냐에 따라 금융권에 통제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우리나라는 러시아 과학자을 초청해 러시아과학자들과 인공위성을 띄웠다는 말은 우리나라 금융시스템등이 러시아의 지배권에 들었다는 이야기다.



우리 할아버지가 하던 여관의 실체는 잘 모른다. 일본인들도 많이 왔다 갓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대학졸업후 일본으로 어학연수을 가겟다고 나서자 아버지는 눈에 흙이 들어와도 일본에는 가면 안된다고 햇다.



난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청년해외봉사단으로 나가서 일본애들과 그런대로 잘 어울렷다.방그라데시에서 알앗다. 인도는 러시아와 친했다는 것을 ...그리고대학때인가 한국일보을 읽으니 인도는 히두교라는 종교가 밑바탕에 깔려서 공산화가 되지 않은 나라라고..그래서 힌두신화라는 책을 샀었다. 그런데 없어?다.



이슬람 사람들은 술을 안마시니 이성에 밝고 방글라데시에서 일반인이 영수증을 쓰는데 소수점 두째자리까지 계산한다. 우리 한국에서 아이들에게 어떠한 공부을 시킬것인가



나도 내일이면 환갑이다. 아니 내가 아는 지인들은 환갑을 넘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한데 나는 아직 젊은 생각이다. 몸은 늙어서 말을 잘 안든는데 말이다. 딸 보기가 미안해서 염색을 햇었는데 지금은 머리 염색하는 것도 귀찮다. 난 단지 아버지가 어머니을 꾸며 주지 않고 그대로 존중을 하지 않앗던 것이 원망스럽다.



순천에서 그당시에 미스순천에서 미인상을 받았다면 ....어머니을 위해 화장품이나 예쁜 옷을 제대로 선물하는것을 내가 철이 들어서는 기억이 안난다.



작은 어머니는 작은키인데도 잘 꾸미고 나을 만나신다. 어머니는 귀걸이도 목걸이도...내가 선물을 해줘서 목걸이도 하셧다. 반지도 ㅡㅡㅡ



애아버지는 나에게 자수정반지와 팔찌을 내옷색깔에 맞춰서 해 준것 같다. ...자주색 목걸이는 나중에 보니 이미테이션이엇다.



부탄UNV로 다녀와서 외교통상부에 홈페이지을 보니 여자의 정장은 악세사리까지 포함을 한다. 목걸이 귀걸이등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외국에는 드레스와악세사리까지 렌탈해주는 비지니스가 잇다는 것이다. 대전에 신세계백화점에 가서 물어보니 자기네는 없다고 한다.



나는 누가 초대해도 입고 갈 정장과 악세사리가 없다. 젊은나이에는 젊음으로 모든 것을 대신하지만 나이가 들면 어느정도는 챙겨야 한다. 부탄에 갈때 나는 서울역에서 이미테니션 귀걸이을 사가지고 가고 이종사촌언니가 준 귀걸이을 가지고 부탄을 가서 했는데 그들은 나와같은 디자인으로 진짜 금귀걸이을 했다.나는 돈을 잘 계산을 잘 안해서 인지 귀금속도 잘 안모았다. 부탄의 장에가서 바닥에 놓고 파는 이미테이션 큰 반지도 하고 파티에 갔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말이 많았겠다.



지금 이나이에 사업을 하겟다고 전산회계을 배워야하나 구대전세무서 앞에 세무서가 있던 빌딩들이 다...그리고 새건물에 새빌딩이...



일반 작은 회사도 바지 사장을 내세워 일을 한다. 그리고 다른 실세들은 앉아서 이익금을 챙긴다.우리나라도 외국에서 투자자들이 와서 공장을 짓고 대기업에 자신들의 자본을 투자한다. 그들의 지분을 넓히는 것이다. 말이 좋아서 투자이지 ..내정간섭이다.자신들의 지배권을 갖기위해서 표면적으로 사장을 내세우며 자신들은 뒤에서 이익을 가져간다.



어제 삼성전자의 주식을 보니 48.5가 외구인소유엿다. 예전에 벌서 50가 넘었었는데 내가 생각할때는 외국인들의 지분이 더 넘을 것으로생각을 햇다.



그리고 어느 택시 운전사에 의하면 삼성은 손익계산을하면 남는 것이 없어서 거지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주식매매증권장이 다시 서야한다. 외국인의 손에 의해서 돌아가게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애들을 교실에만 가두어서는 더욱더 안된다.아이들이 아이들의 세상을 보고 어른은 어른의 세상을 보아야한다. 우리 할머니가 남자는 아내가 열명이 되어도 된다고 햇단다.그래서 어머니는 눈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