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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v첫 시작은 얼굴에 키스을 해서 당황부터...
다른 unv들은 집살돈 저축. 자녀 외국유학비 마련등.....지방UNV 수도로 오면 저녁식사 자비로 대접
26.05.16 2223l박향선na4am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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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년 봄에 나는 부탄에서 방글라데시로 여행을 갔다. 부탄에서 6개월을 생활하고 방글라데시을 방문하면서 KYV방글라데시 호스텔에서 묵어야 했다. 그때는 봉사단 생활만 생각하고 내가 호스텔에 묵어 KOICA오피스에서는 안좋아 했을것 같다.그때 나는 솔직히 UNV생활이 힘들어서 그만 둘려고 했다.

방글라데시에 부탄에서 산 카르마우라라는 사람의 부탄소설을 가져가 호스텔에 두고 왔다. 부탄에서 가져간 지도는 방글라데시에서 게스트하우스을 하는 분에게 건네주었다. 방글라데시한국대사관에 가서 부탄의 타시강 지도을 건네 주었어야 했는데 ..내가 그때 의전에 대해서 잘 몰랐다.

내가 KOICA호스텔에 하루을 묵었는데 나중에 그게스트 하우스에서 초대가 왔었나. 그 호스텔에 묵으라는 이야기 였던 것 같다. 그 게스트 하우스에 안주인은 한국대사관저에서 일했던 여자로 한국대사관에 영사와 결혼해서 그 나라에서 게스트 하우스을 운영했다. 남편에게 전달되었길 바라면 부탄의 타시강 지도등을 건네었다. 딸의 친구 엄마와 얼굴이 비슷하다. 최보은 엄마와 얼굴이 비슷하다.

방글라데시에서 아사드게이트원예센타에 방문해 사람들을 만나서 인사을 하고 나는 6기 오선경과 만나기도 햇다. 그때 오선경씨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척 지쳐 보엿었다. 쿠밀라의 일본협력대 지역개발지역에서 일하고 있는것으로 아는데 나에게는 아무런 이야기도 안했었다.

방글라데시 한국해외봉사단 후배들이 회지에 글을 싣겠다고 글을 부탁해서 키스에 대해서 글을 보냈었다. 부탄UNV로 도착해서 놀랜것은 UNV들이 나을 껴안고 얼굴에 키스을 하고 얼굴에 이마등에도 키스을 해서 내가 당황하고 얼굴이 빨개지자 나중에 사람들이 자재을 햇다. 미국인도 키스을 했던가 껴안으며 인사을 했던가 아무튼 당황했다. 아무도 나에게 서양인들이 만나면 껴안고 키스을 한다는 것을 이야기해준사람도 없엇다. 나는 그저 비지니스에서 이들이 악수만 하는 줄 알았다. 나중에 서로 인사을 하며 트레킹를 부탄UNDP에 스위스 인인 핼랜과 하게 되엇는데 그녀가 내가 키스인사에 대해서 당황했다고 하자 그녀가 이야기해 주엇다. 유럽에서는 각나라마다 인사을 다르게 한다고 ...서로 꺄안고 이마에 키스을 하기도 하고 볼에 살짝 입맞춤하기도 하며 각 나라마다 인사법이 다르다고 이야기 해주었다.그리고 스위스에서는 식당을 가거나 파티에서 여자 혼자서 가지 않는다고 한다. 여자는 남자의 에스코트을 받아서 식당에도 같이 가고 모임이나 나이트클럽등에도 같이 간다고 햇다

부탄에서 한국에 돌아오기전에 호주분이 부탄에서 결혼식을 하고 피로연을 하는데 식사을 할때 도 식사자리에 네임택이 다 있었다. 아무대나 앉?것이 아니었다.난 그 모임에 가기직전에 부탄의 타시강에서 방글라데시UNV가 온다고 전화가 와서 그 파티에서 주빈인 호주브라운 힐과 모일라 힐부부에게 인사만 하고 왓다. 내 옆자리에는 이름이 헨리 마틴이었다. 마안하다는 생각은햇었는데 약속을 해서 ...지방에서 UNV들이 올라오면 내집에서 저녁식사을 간단하게 준비해서 팀퓨시내의 UNV들과 식사자리을 마련햇었다.내가 할려고 나선것 보다는 UNV 오피스에 현지인 오피서가 자꾸 나에게 알려주었다. 내가 이물어웠다보다. 처음에는 그냥 그러러니 하고 저녁에 식사자리을 마련햇는데IMF이후에는 생활비가 갑자기 300달러가 줄엇는데 이런 자리을 마련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무리였다. 그래서 안하려고 하다가 나중에는 포트락 파티로 바꾸기도 했다.다른 UNV들과 이야기을 나누다 보니 그들은 저축을 하거나 자식의 유학비와 본국에돌아가 집을 사기위해서 저축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탄에서 외국에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을 들어보니 그들은 유학 중에 돈을 모아서 부탄으로 돌아와 집을 사기도 하고 자동차을 사기도 한다는 것이다.부탄은 다른 나라에 비해 땅이나 집값이 싸서 인지 내가 돌아올쯤에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부탄에 어느 종을 누가 산다는 소리을 했다. 얼마라고는 하지 않았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유학생들과 별로 같이 일한 경우는 없었다. 일반 현지인과 밀접하게 생활을 했고 그들은 유학이 아니라 가까운 인도나 태국등에 연수정도을 다녀오는 정도이거나 가지푸르의 농업연수원에서 연수정도이다.물론 국제기구나 국제 엔지오등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정부고위직 퇴직공무원. 월드 뱅크등에서 일하셨던 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도 만났다.

부탄생활을 하다가 방글라데시을 다녀온 후 가만히 보니 내가 이일의 계약기간을 만료해 다른 한국인들도 진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봉사단 생활에도 의전이 있어서 공무원의직급을 생각하게 되고 어느 행사에 가도 자리가 있다.

하다 못해 봉사단으로 가면 그 나라 정부에서는 직급에 따라 정부에서 가구등을 지급한다. 나도 잘 몰랐다. 내가 사는 집에 다른 UNV들이 와서 식사을 하고했는데 내가 지급받아야할 가구와 비품을 덜 받았으니 정부에 요구하라는 것이다. 의사들은 그나라에서 UNV로 받은 전화기와 책상등이 지급이 안되었다고 가서 요청을하라고 했다.나중에 들으니 VSO와 JOCV SNV VSA등은 그나라의 공무원에 7급 대우을 해주고UNV는 6급수준이라고 현지인들도 알고 있었다. 방도 공무원의 직급에 따라 방이 두개가 되기도 하고 세개가 지급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돈에 의해서 집을 구하지만 그나라에서는 방의 개수가 몇개이냐도 상당히 중요하다.처음에 갔을때 쿠바에 산타나 의사가 자기가 살던 집에 들어와서 살라고 햇는데 너무 크기도하고 나중에 알고보니 이탈리안 하우스에는 UNDP주니어 오피서들이 살고 있었다.
일층에는 핼랜. 이층에는 유니세트에 일본인 여자 오피서.그옆집에는 UNDP에 핸리마틴이 살고 잇었다. 나중에 핼랜이 자기 집에 초대해 갔을때도 핼랜 옆집은 비어 잇었다. 사람들은 나중에 나보고 집을 다운타운가로 옮기라고 이야기 한 것이 아마 이탈리안 하우스로 들어가라는 이야기 같았다.

부탄은 왕정국가로 내가 방글라데시을 다녀온 후에 며칠 후인가 그 다음주인가 인도에서 최대화대사가 왔었다. 레모바을 지나가는데 기획원에서 근무한다는 사람이 나보고 한국대사가 드룩호텔에 와있으니 만나러 가야 한다고 나을 졸랐다.나는 아무런 인폼도 못받은 상태에시 그을 따라 드룩호텔로 그의 오토바이을 타고 갓었다.그떼 최대화대사을 만나고 영사분도 만났는데 인도 뉴델리에 오면 자기 집에서 자라고 이야기 했다. 한데 부탄 MLA로는 인도 뉴데리까지 비행기을 타고 가는 것은 무리엿다. 현지인들은 팀퓨에서 남부탄인 푼술링까지 가서 인도 국경을 넘어가서 버스을 타고 기차역까지 가서 그곳에서 기차을 타고 이동한다고 했다. 한데 인디아 타임즈에서는 비하리 지역에서는 열차 강도 사건도 종종일어난다고 기사가 나온다.

그리고 UNV들과 이야기을 나누어 보니 동유럽에서 오건. 아프리카에서 오건 몽골에서 오건 일단은 인도대사관에 들려서 인사을 하고 부탄에 왔다는 것이다.나에게는 아무도 부탄에 오기전에 인도대사관을 들려거 가라는 이야기을 해준 이가 아무도 없엇다.외교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도 몰랐다. 한국UNDP 서울사무소에서는 연세대에서 건강검진을 받자 부탄에 가는 비행기 티켓을 건네주었는데 그 비행기 티켓은 태국을 경유해서 잠깐 캘커타을 착륙햇다가 부탄을 가는 비행기엿다.우리나라의 외교관리가 너무 엉성햇다는 것이다.내가 집안에 공무원이 있거나 다른 봉사단동기들처럼KOICA에 친척이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 졌을까

나중에 봉사단 임원진으로 일하면서 보니 봉사단단원끼리도 언니 와 동생이 봉사단으로 나갔다 오고 한국청년해외봉사단선발 초창기에는 홍보도 안되고 해서 사람을 뽑기가 힘이 들어 KOICA 직원들에 친척들까지 동원이 되었다고 한다.그리고 봉사단 국내교육시에 교관들은 짐짓 긴장하며 일한것은 외국에 봉사단 파견으로국내게 종교계와 선교사협회에서 긴장을 햇다는 것이다.그러니 조심해서 외국에 나가서 생화을 하고 배운다는 자세을 가지라고 당부을 했었다.

최대화대사가 다녀간 그 주에 WFP의 그나라 대표인분이 자신의 집으로 저녁식사초대을 햇다.그대 그분 와이프가 내가 직접 보는 앞에서 토마토 스파게티을 준비해서 서브해주었다. 그자리에는 부탄에 국왕비서의아내인 일본인이 함께 했다. 국왕비서는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다가 일본인을 만나서 그 분과 부탄에 왓다고 햇다. WFP의 대표님은 이탈리아 분으로 그분의 거실에는 좋은 스티커가 양쪽에 놓이고 음악듣기에 좋은 시설이 되어 잇어서 아내분이 자주 놀러오라고 초대을 해주엇다.간단한 스타게티을 먹는데도 그냥 먹지 않고 와인을 한잔 마시고 스파게티을 간단하게 먹고 왔었다.그리고 그 대표분은 나에게 보헤미안의 삶의 시작을 축하한다며 건배을 햇던가최대화대사님은 그전에 임지가 덴마크엿다고 한다.부탄에 도착해 UNV등의 오리엔테이션을 받을때 덴마크에 DANIDA대표부인인가 누가 와서 현지인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했나 정확하지는 않은데 그 모임이 끝나고서 그 대 표는 한국에서 애기을 입양했다면서 가끔 놀러오라고 햇다.그런데 전화번호는 주지 않았다.나중에 내가 일이 바빠지자 우리집에 일을 도와주러 학생이 한명 알바을 하겠다고 찾아왓는데 그 아이가 덴마크에서 보낸 아이인가 다니다 이야기을 햇었다.방학때 잠깐 우리집엣거 일을 햇는데 일보다는 나의 말상대 엿다. 호텔에도 데리고가서 쥬스나 식사도 하고 장에도 같이 가고....봉급도 많이 주었다.그나라 시세보다....내가 입던 옷을 주기도 했다. 다운타운가에 내려가서는 레모바에도 한번은 같이 데리고 가기도하고 말이다.난 그나라에서 언덕길을 오르고 내리다 보니 허벅지가 다리가 너무 아파서 나중에 쿠션을 다리에 올려놓고 잤다. 부탄에서 한국에 올 무렵에는 오토바이도 못타면서 UNV오피스에서 오토바이을 사용신청서을 낼려고 알아보기도 했다.

한국에서 할머니가 위독하고 여동생 향미가 전화을 안햇더라면 아마 그 비행기표값대신에 인도에 타타 자동차을 샀을까>인도타타 자동차을 면세없이 부탄에 들여오면 그때3500달러였다처음에는 음악을 들을까싶어서 소니에 대해서 일본인JOCV에게 물으니 자기 나라에거는 소니 보다 캔우드을 더 알아 준다고 이야기 했엇다.난 부탄에 갔을때 한국에서 가져간 카세트라디오가 고장이 나서 일본에 산요전자카세트라디오을 부탄가게에서 샀다. 전화기는 의사들은 부탄정부에서 지원이 나왓&39는데 농업성에서는 준비을 안해주어 내가 부탄가게에서 중국산 전화기을 삿다.나중에 이야기을 들어보니 구제기구나 외국인들은 전화기을 싱가포르에서 구매을 한다고 한다. 나는 un 행정부에서 싱가포르로 선지불로 캐논 노트북인쇄기 을 샀다. 나중에 종이가 안좋은 것을 사용해서 먼지가 생겨서 캐논인쇄기가 고장이 나서 싱가포르까지 다시 보냇던가 무척 힘든시간을 보냇다.부 탄에 UNV 모임을 하면서 전기밥솥과 물전기보일러통은 태국전자제품을 사고 세탁기와 믹서기는 인도것을 샀었는데 정말 튼튼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세탁기을 내가 팔지도 않고 그냥 온것 같다.그때 너무 바빴다. 자동차도 없이 일일이 국제기구와 그나라 장성집과 정원이 이쁜 주택과 화분을 잘정리한 정원등을 컨택해서 부탄 주택정원투어을 기획해서 부탄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느라 무척 힘들었다. 그 투어계획서에 부탄소재의 국제기구대표분 전화번호와 군장성집 전화번호가 나와잇었다. 한국에 돌아와 노트북에 문제가 생겨서 대전 둔산동에 명화빌딩에 삼성서비스센타에 맡기기도 하고 서울에 갔을때는 용산전자상가 삼성전자서비스센타와 동서울버스터미널 삼성전자서비스센타에 노트북을 맡기기도했다.
내 노트북에는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쓴 글과 부탄에서 쓴글도 있다.부탄관개시설제안서도 이노트북에 있었다. 부탄생활은 재미도 있는 날도 있었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을 상대하다보니 내 나이을 잊었다.한국에 돌아와서는 내가 정말 나이가 정말 많이 든 사람같이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세월의 격차 앞에서 난 딴 사람인 것같았다.한국에 와서 조카들을 보는데 나도 같이 울었다. 애 보는 것이 처음이라 아니 방글라데시다녀와서도 큰 올캐가 밑에 방에서 자면 나는 여자조카애을 봤었다.한해도 이제는 두아이의 엄마다. 나의 딸은 이제 스무살을 넘고...나는 육십을 바라본다.딸은 처음에 엄마가 봉사단 다녀온 이야기을 안좋아 햇다. 그러다가 중학교들어가고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나의이야기에 귀도 귀울이고 ....나는 방그라데시 한국청년해외봉사단 파견30주년글을 쓰기 시작했었다.자꾸 생각이 난다. 아직 쓰지 않은 이야기가....골프매거진에서 방그라데시 골프장 소개의 글을 번역해서 올렸는데 편집자가 그것은 가치가 없고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다른 골프장이야기을 달라고 햇다.나는 그 다음에 그 골프매거진에 안나갓다 집에서 발을 동동구르며 울었다. 엄마 나외국에서 살다 온 것을 한국에 알리고 싶고 그나라에 대한것도 알리고 싶은데 편집자가 안해 준데...엉엉 울었다. 내가 외국에서 살다온 나라의 것들은 후진국이라 한국에서는 소용이 없는 것 같고 모두 시간을 허비한 것이 아닌가. 발을 동동구르며 울었다. 아이처럼....지금 이야기 하는데 방그라데시 골프장 리모델링 하라고 어디에다 이야기해야 하나 사진도 별로고..방글라데시 관광청에서 골프장을...그때 나는 대전에서 서울로 고속버스을 타고 출퇴근햇다. 내려올때는 서울역에서 기차을 타고 내려오고 .....그래서 방글라데시나 부탄글을 안쓰려고 햇었다.내가 방글라데시글을 쓰는데 딸이 차을 타서 책상에 두고 갔었고 가끔씩을 무엇을쓸까 고민하면 글재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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