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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평등에 앞서 제3세계의 문화관습알아 여성도 리더로

30여년전에 방글라데시에서 농업연수가 있었다. 그 연수에서 야지기 세명이 있었다. 한 명은 뱅갈리여성농업직 공무원이었고 그리고 한국청년해외봉사단으로 여성이라 교육을 받는 대구에 경북대 농생물학과을 나온 고은주와 대전 출신에 충남대학교 원예학과을 나온 박향선이다.



그 교육을 한 창 받는데 농업 연수동안에 다들 친철했다. 방글라데시 전국의 디스트릭에서 올라온 분이었다. 교육이 이론과 현장방문교육과 실습으로 이루어 졌다. 연수가 진행이 되면서 유기농 퇴비을 만드는 과정이 있었다. 서로 유기농퇴비을 만드는 과정을 교육을 받고 실습을 위해서 유기농퇴비을 실재로 만드는 과정을 위해 세 팀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여자가 세명이라 세팀으로 나누어 여자들이 리더가 되어 같이 발빠르게 움직였다.



내가 이끄는 팀이 이겼다. 한데 이상한 것은 그들 분위기가 이상하게 변했다는 것이다.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보다는 나을 따을 시키고 그전에는 친절하게 이야기하더니 나중에는 ....연수을 받으며 좀 힘들었다. 방글라데시가 남성위주의 이슬람사회여서라고 생각했다.



체스놀이을 할 때는 여성이 최고다. 체스에서는 여왕을 최고로 여긴다. 서양사회는 퍼스트 레이디을 존중한다. 장기에서는 왕을 보호하는데 체스에서는 여왕이 비숍도 왕도 쳐 낼 수있다. 깜작 놀래서 체스을 한번 강좌을 가고 안갔다. 그런데 어린애들이 그 체스을 배우고 한다. 유럽이나 서유럽 중동아시아에서도 체스을 한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우리나라 왕은 왜군이 쳐들어오자 한양을 버리고 북으로 피난을 떠난다. 영국에 소설에는 성주들이나 귀족들이 십자군 전쟁에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왕들이 선봉에서서 싸움을 한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잠행이라는 것이 있어서 왕이 민간인이 사는 곳에 시창을 나갔다고 하지만 전쟁시에 선봉에 서서 싸운 사례는 역사에 없다.



이 체스나 장기라는 놀이는 인도에서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동으로 중국을 거치면서 장기가 되고 체스는 중앙아시아을 거쳐 유럽으로 가서 체스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왕이 없으니 남편이 없는 사람은 장기로 이야기하면 게임판에 낄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이기에 유럽은 남편이 없어도 다시 남편을 얻고 전쟁에서도 여왕은 기사들이 보호한다.



이슬람의 창시자 마흐무드는 돈이 많은 부유한 연상의 여자와 결혼해서 공부을 통해서 이슬람 종?을 창시했다고한다. 그래서 인지 처음에는 전쟁이 나서 남편을 잃은 여자들을 아내을 두는 전통이 생겨 네?의 아내을 두게 했다고 한다. 이것이 나중에는 부유한 사람이 네명의 아내을 두는 전통이 된 것이라고 한다. 어머니가 이런 말을 했다. 어떤 사람은 아내가 네명인데 각자가 벌어 먹고 산다고 말이다.



방글라데시에서 한 친구에 의하면 방글라데시에서는 릭샤꾼이 여러명의 아내을 두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어떤 연극에서는 택시 운전사의 이중생활을 비꼬는 연극을 했었다.택시운전사가 두명의 아내을 두고 왔다갔다하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어느 TV 드라마에서는 어느 여학생을 택시 운전사가 납치해서 구애을 하는 드라마가 있었다.이곳은 몽골족의 풍속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살고 있다.어떤이는 기혼인데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남자와 연애를 해서 결혼을 하고서는 본국의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고 어떤 남자들은 본국에 여자가 있는데 한국에서 결혼하는 경우가 있다.어떤 한국인은 외국인 어린신부와 결혼해서 청소년이 된 아들이 있는데 처음에는 일도 잘하고 하더니 자기나라의 사람들과 어울리더니 가출도 하고 애 교육은 나몰라라 한다고 한다.



난 내가 살기가 바빠사 이들의 이야기을 들어주는 것도 너무 힘들다. 문창동에서 부동산 분양시에는 나중에 유치권이 행사가 되는데 아버지가 와서 임대 연장계획서을 쓰면서 자기 딸을 부탁했다.그리고 유치권행사가 되고 경매가 네차례 유찰되는 동안에 회사에서는 자기들끼리 대전을 서울에서 왓다 갓다 했다. 처음에는 나보고 한 번 같이 가자고 했는데 나중에는 연락도 안햇다.



세입자들은 시도때도 없이 전화을 걸어 건물에 하자보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에코토피아에서 알바라 돈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었다. 일주일에 네번 하루4시간일하는 것이었다. 분양하면 백만원 임대 계약서을 쓰면 20만원이었다.처음에는 괜찮은 일자리라고 생각했다.



한데 건물 구조가 나중에 부동산이나 전단지을 보고 연락오는 사람들을 보여주면 냉장고을 놓을 위치가 마땅치가 않고 일반 넓은 평수에 아파트에서 신혼을 살다오는 사람들에게는 짐이 너무 많다고 이야기도 하고...



건축설계을 할 때는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아파트을 설계하는 것도 좋지만 국내에서 살림을 하는 젊은 주부나 직장여성등의 생활패턴은 다르다고 본다. 그럼 아파트설꼐도 일괄적으로 똑 같은 수가 없다.



집안에서 살림을 하며 아이들 돌보는 엄마에게 부엌은 좀 넓어야 한다. 그리고 아파트의 또래 엄마들과 오전이나 오후에 차 한잔을 하면서 이야기하자면 거실도 좀 넓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맞벌이 부부나 캐리어 우먼들 독신자들은 부엌이 클 필요도 거실이 필요도 없다.



하지만 20년전에 부산에서 본 동아티비에 프랜즈라는 미국드라마는 친구들이 넓은 거실을 함께쓰는 세어하우스에서 벌어지는 정말 유쾌한 드라마 였다. 문창동에서 인터넷으로 부동산자료을 보는데 그당시에 서울에서 역세권 근처로 세어하우스가 선보이고 있었다. 일본의 자료을 보니 일본에서는 취미가 같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세어하우스가 등장하고 있다는 부동산 뉴스을 보았다.



현대인의 가족파괴에서 또다른 가족을 만들어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생활패턴이라고 본다. 우리의 교육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우리때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는 충성을 외쳤다.중학교떼는 한문을 통해 군자의 삶과 인간으로서의 덕목을 가르친다. 도덕을 통해 인간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철학이 없이는 정치도 경제도 없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중국의 많은 문화유산과 책들이 사라?다고 한다.그래서 일본에서는 중국의 사서 삼경등을 연구하고 손자병법을 연구하고 논어등을 연구해 자기나라의 경제와정치에 근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중국보다 사서삼경등 유학이 더 연구되고 발전이 되었다고 한다.



베트남의 도이모이나 중국이 개방하면서 공자학당도 생기지만 중국에서 들어온 시집이나 소설등은 많지가 않다. 1980년대는 독일 시인의 시집도 우리나라에 소개 되었다. 중고생때는 이런 시집과 에세이집 소설도 많이 사서 읽었는데 대학가서는 서점이 유성에 없어서 인지 거의 안샀다.딸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면 딸은 아이패드로 드라마을 본다. 각국에 ....요새아이들은 조숙하다.



유평초등학교에서는 초등학생들끼리 여자 친구와 남자친구을 하기로 했다가 우리 사귄지 몇칠이야기을 하고 서로 틀어지면 헤어진다고 한다.어떤 아이는 한아이와 오래 친구사이로 있고 어떤 애들은 금방 깬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야기을 들어보면 엘지에 IPTV에 디즈니 방송에 나오는 미국초등학교의 풍경과는 사뭇다르다.



IMF가 들어오면서 외국의 문화가 물밀듯이 한국에 장례식 풍습도 결혼 풍습도 여행문화도 바뀌었다. 부동산개발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꼭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부동산설계 아파트나 빌딩 설계하는 사람들은 주택관리사와 공인중개사와 미술등의 감각이 필요할 것 같다.



아버지가 내가 고등학교때인가 계룡건설의 어느 아파트에 도면을 밑바탕이 되는 그림을 그리게 시킨적이 있었다.내가 나온 대전성모여자고등학교는 독일계 세인트 마리아 수녀회에서 지원하게 1966년에 사립학교로 초등학교와 여자중고등학교가 생겼다고 한다. 나중에 여자 중학교는 없어지고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만 남았다.전인교육을 중시하고 여자의 순결을 강조하는 학교로 여자가 치마을 입으며 1980년도에 성폭력 당할 확률이 적다고 이야기하며 치마을 입을 것을 여학생에게 이야기 했다. 나이가 드니 그말이 맞다. 바지보다 치마을 입으며 속옷을 더 챙겨 입으니 말이다.



외국의 풍습이나 민간신앙을 알고 그들의 공무원세계와 여러가지을 알아야 한다는것은 그나라의제사제도에 따라 여자들이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네팔에서는 꾸마리가 있어서 살아있는 여왕으로 추앙을 하지만 그 이후에 삶은 비참하다고 한다.예전에는 프랑스에 신정정치을 펼치며 나는 테양왕이라고 한 루이14세는 하루에 세번 관계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민간신앙인 무속신앙에서도 접신이라는 것이 있고 어촌에는 민간신앙으로 남근을 숭상한다. 아마 풍어제 이야기을 하면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져 죽은 장면이 나온다.



우리나라에 외국에 크루즈가 입항하고 여러 화물선이 항구을 드나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우리나라는 만선을 기원하는 풍어제을 열면서 어떤 일이 벌어?을까 외국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부탄이라는 나라에서 절을 짓는 곳인가 무슨 건물을 짓는데 현지인이 안내을 해서 가는데 그 안에서 어떤 사람이 못들어가게 햇다. 현지 오피서에 말에 의하면 여자는 월경을 해서 부정을 판다는 것이다. 한데 아시아위크지에 보면 여자가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는 모습이 나오고 CNN에서도 여자들이 건설현장에서 선전을 한다. 페이스북에서보니 이슬람국가에도 여자 건설인 건축설계사가 건물을 짓고 있다.. 딸이 중학교떼 심즈라는 게임에 빠지면서 건축인테리어에 관심을 갖었다.게임도 몇만원한다. 처음에는 인테리어 꾸미는 게임이나 옷갈아 입히기 게임을 하다가 나중에는 건물을 지으며 밤을 새우기도 했다. 성적이 잘 안나왔다. 그때 충남여자 중학교에 일학년부터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아버지가 건설일을 한다고 했다.그집은 교회을 다닌다고 하고 삼성동에 살고 40평 아파트에 산다고 햇다. 우리집에 와서 너희 그렇게 놀면 공부는 언제하니 했더니 나중에 학년올라가면 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우리집에 와서 언젠가는 옥상에서 놀기에 치킨을 배달해서 그 친구와 딸이 옥상에서 치킨을 먹었다. 집에서 저녁밥상을 차려주면 잘 먹어서 우리어머니가 참 복스럽다고 좋아햇다. 그런데 어느날 집에 오니 내 찻잔 테이블에 하얀 종이을 붙이고 구찌 마크을 그려놓앗다. 그리고 그 위에 테이프을 붙여놓아서 얼마나 기분이 상했던지 이야기도 못하고...정혜수라고 가야금 동아리이기도했다.



언젠가 친구와 옷을 사러났다왔는데 미색옷으로 너무 야하게 느껴져서 중2학년생이 입기에는 안좋다고 야단을 ?었다. 혜수가 골라준 옷이라고 하면서 문을 닫고 나갓었다. 그다음부터는 모바일폰으로 옷을 사면 나에게 고른 옷을 보여달라고 햇다. 그런데 딸이 다른 친구와 다니면서 그 친구가 이야기도 잘 통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한데 그애가 문제을 일으키면서 우리집에 와 있지 그애 엄마가 우리집에 오기도 했다. 장여진이라고 말이다. 중2 시험날이 내일인데 저녁늑제 있다가 갔다. 우리 딸은 중2때 가을학기에 학년말 시험을 망쳤다. 그애들은 코로나 이면서 학원을 다니며 고부을 해서 월평균이 90이 넘는다고 한다. 시험때가 되면 학원에서는 시험문제을 콕콕 찍어준다고 한다.



우리때는 1980년대는 학원이 많지 않고 대부분 학생들이 학교공부만 했고 시험때가 되면 학교선생님들이 별표을 치면서 이번 시험에 중요한 것이라고 이야기해주는 선생도 간혹있었다.딸은 성적이 좋지 않아서 벼락치기를 안하면 시험을 잘 보기란 힘이들다. 딸은 그해 여러일을 겪고 이 장여진과 이아연이라고 아버지가 경찰이라는 친구들과 손절햇다. 그리고 중3때 과외을 시작했다.원래는 성형을 해주기로 하고 공부을 했는데 나중에는 ..



충남여중에 애들중에 상당수는 중2겨울방학때 성형수술을 해서 겨울방학 끝나고 학교을 갔더니 눈등이 부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다고 자기도 쌍꺼풀수술하면 예쁠것이라고 성형을 해달라고 해서 처음에는 안된다고 하다가 둔산동에 성형외과에 가서 상담까지 받았었다.



여자중학교 3학년에 졸업사진을 5월에 찍는다고 한다. 딸은 그때 맞추어서 다이어트을 한다고..내가 좀 일찍 께달았으면 교복을 더 큰 사이즈로 사주었어야 했는데 ...



딸은 그런이야기도 했다. 이야기는 장여진과 잘 통했었단다. 국민학교때 그림도 그리고 여러가지로 경험도 해서 ...그리고 똑똑하고 말이다. 혜수는 ...헌데 그아이는 할 줄아는 것이 많다고 한다. 기타도 치고 퀵복싱도 하고만드는 것 도 하고 말이다.



중3겨울방학에는 내가 종로학원을 다니라고 했더니 기타을 사달라고 하고 30만원상당하는 이어폰을 사달라고 하고 이인용 소파등을 사달라고 했다. 문창동에서 오면 집에 그냥 누워 있었다.겨울이라서 그런가 생각을 했다.그래서 이때쯤에 어머니에게 같이 살자고 햇다. 딸은 중3봄에 할머니와 같이 살았으면 좋겟다고 햇는데 내가 너무 힘들다고 햇다. 내가 모든 살림을 다해야 하는 가운데 어머니까지 ...어머니는 집에서 손하나 까닥을 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방청소도 않는다. 어쩌다 기분이 나시면 국한 번 끎이고 반찬 한번....삐치면 밖에 나가서 남동생이 준 카드로 식사을 동네 행정복지센터앞에 이발소 아줌마을 불러서 사먹고 들어오신다.그리고우리에게는 짜장면을 사면서 계에 가서는 이것 저것을 산다는 것이다.



남동생도 나에게 카드을 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어느날 추석에 느닷없이 나에게 이야기 했다. 어머니가 카드을 준비 얼마 안되어 2000만원을 쓰셨다고 ..어머니는 서울에 여동생를 만나러 가서 친척행사에 몇십만원부주도 하고 말하셧다. 나에게는 서울에 간다고 이야기도 안하고 나가셧다가가 나중에 기분이 풀리면 나 언제 서울에가서 친척행사에 다녀왓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여동생을 만나고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집에 살다가 이사을 나가서는 밥을 집에서 해먹지 않고 이식당 저식당 다니면서 사먹고 다니신것이다.내가 매일 따스한 반찬을 사다주면 옆집아줌아 이야기을 하며 그 아줌아 딸은 일주일에 한번씩 반찬등을 해서 방문한다고 ...이쯤에 어떤 아저씨을 만나는 것 같아서 처음에는 매일가다가 나중에는 방문을 줄였다.



코로나가 되면서 어머니가 식당에서 밥을 안사먹으면서 나중에서야 어머니가 나에게 고맙다고 햇다. 딸은 중3 봄에 할머니랑 살자고 하고..



기획부동산에 가보면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많다. 젊은 분들은 많지가 않다. 일비가 그날 그날 7만원씩 나오는데 할머니들이 외모가 달라진다. 파마도 하시고 옷도 사서 입고 화장품도 사시나 보다.

그때는 좋아 보였다.그런데 그분들이 그돈을 며느리에게 밥한번 차 한잔 했을까 그리고손주들에게 꼬낏꼬깃한 용돈을 손에 쥐어 주었을까 남편과 따스한 밥을 먹었을까처음에는 외모 꾸미는 것이 좋아보였던 것이 우리 어머니는 말씀을 하셔도 잘 안하신다. 그래서 내가 교육청이나 시청에서 광고가 나오면 옷을 카드로 끓어서 좋지 않은 옷이지만 사드렷다. 한데 하얀자켓은 화사한데 한번도 입지을 않으셧다. 티셔츠은 입고...



처음에는 기획부동산에 할머니가 자신을 꾸미는 것이 참 부러웠다. 내가부탄에 돌아와서 언제인가는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다. 그냥 앉아만 있어달라고 내가 돌아다니면 일을 할테니 나와 사업을 하자고 말이다.



내가 졸업할 무렵에 국제수학에서 텔레마케팅 상담을 하는데 그 때 국민학교교장인가 선생으로 정년퇴직하신분이 회장으로 앉아게셨다. 나중에 그 회장님에게서 이야기을 들어보니 그 분이 정년퇴직한 돈을 이 아들이 사업을 한다고 달라고 해서 투자을 햇다는 것이다.그리고 큰 딸인가는 세탁업인가 뭔가사업을 햇는데 그 남자조카가 방학? 와서 국제수학일을 도왔다.나중에 사무실이 옮기고서는 이 회장님이 잘 안나오셧던가 그 할아버지는 답답해서 이야기 햇던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어머니는 내말을 안따르셧다. 남동생들이 이혼한 상태라 조카들이 세명이 집에 있어서 그애들 챙기는 것도 바빴다. 내가 하다못해 상가 주택이라 가게 하나을 애들 공부방을 하려고 했다.금성출판사을 가니 그 공부방 프로그램을 이야기해서 20년전이다.



사람들은 공부방을 하기 위해 아파트에 대출을 얻어서 이사하기도 한다. 어린이집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자본금이 보통 예전에는 2억에서 3억이 들었다고 한다. 쉽게 결정을 하기가 어려워서 어린집 알바를 다니는 미술학과 나온 애기 엄마을 보기도 했다.



내 올캐는 이야기을 어머니에게서 들어보니예전에는 술집을 하다가 배운것이 없이 살기가 힘들엇는지 건설현장에 나가서 일을 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막내 남동생이 열심히 사니까 애들과 같이 살라고 집을 얻어주었나 싶었다. 그런데 얼굴을 십년정도 못보다가 봤는데 툭하니 한다는 소리가 어머니와 왜 헤어져 살아요 기가 막혀서 자기 딸을 어머니와 아버지와 손이 한참 갈때 키워줄때 인사도 없더니 딸이 결혼한다니까 납작이 ....언젠가는 ....사람은 잘 배우던 못배우던 경우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때가 되면 고마운 사람에게 인사도 하고 밥 한끼 못사면 문자나 찾아가 차 한잔 하고 말이다.



내가 유평초에 김아연엄마가 대전예술고등하교갔다고 이지헤어미용실에 와서 인사을 할때 아 사림이 ?구나 생각을 햇다. 닭강정집을 할때 나는 아연이가 희영이을 챙기어주어서 돈은 없지만 2000원짜리 닭강정을 수시로 사고 돈이 있으면 우동도 가서 사먹고 닭강정도 큰것으로 사주었다. 아연이 아버지가 키는 작아도 항상 웃으며 인사을 하고 닭강정가게에 아줌마는 별로 없고 항상 아저씨가 있었다. 아연이 엄마는 저녁무렵이나 아이들과 아이들 엄마가 있을 무렵에 거의 있었다.

내가 아연이와 나중에 희영이을 못놀게 한것은 희영이 생일 파티 모임을 닭강정에서 햇는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아연이가 일어나면서 자기 수영자을 간다고 박차고 일어나서 희영이 생일이 엉망이 되었다. 집에서 생일 잔치을 하려고 했더니 어머니가 못하게 하고 접시가 없었다. 그래서 중고매장등에 가서 대접시을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한짐이다. 이집으로 이사올때 부엌살림들이 거의 사라져서 이집에 부엌살림은 내가 하나 둘 사모은 것이다. 새것도 있고 헌것도 있고...



이사짐센타에서 오셧기에 박스에 대접시가 든 찜통을 박스에 넣으면서 아저씨가 한박스에 하나의 짐만 들어간다고 햇다. 그래서 내가 찜통안에 그 옆에 각종 팜프랫이 들어간 박스을 하나 넣었다.찜통이 흔들려 접시가 깨질까봐. 그랫더니 무겁다는 것이다.그리고 다른 아저씨가 그 박스을 등에 이었다. 무거울 것 같아서 뒤에서 들어주며 밀대을 가져다 놓아서 옮기면 편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계단이 있어서 안된다는 것이다. 두칸 밖에 안된다.그리고 다시 한번 이야기 햇다. 찜통에 접시가 들어있어서 깨지기 쉽다고 ... 어떻게 박스에 찜통하나만 넣을 수 있냐고 말이다. 접시가 깨지면 어떻게하냐 그옆에도 짐이 들어가야 찜통이 안움직여서 접시가 파손이 안되지 않느냐 .할아버지는 이해을 못하신다. 한국분이 아니신지....접시가 파손된다고하는데도 막무가내고 나중에는 밖에 나가서 회사에다 전화을 걸었다.

그리고 딸방에 침대와 책상부터 옮겨달라는데 귀로도 안듣고 밖에 세탁기 먼저 두분이 들어서 트럭에 올리셧다.그리고 나서 박스을 옮길려고 하셨다. 한박스당 만원이라고 한다. 박스에 짐을 다 채우는 것이 아니란다. 그런데 이삿짐센타 홈페이지을 보면 이사짐센터 박스가 규격이 다다르다.

없는 살림에 남동생이 이삿짐 비용을 대는데 어떻게 더 말을 할 수가 있을까그리고할아버지들이 침을 옮기다 다치면 물어주어야 하나 걱정이 되서 밀대을 사용햇으면 이야기햇는데...



사무실에서 나중에 연락을 다시 주겟다고 다른 사람을 보내겟다는 식으로 하더니 4일지나서 전화가 왔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알아보니 방문견적이건... 한 120130만원을 이야기한다.



처음에 반포장이사면 내가 전부 짐을 싸는 것이 아니라 같이 짐을 싸는 것이라 생각을 해서 옷만 비닐봉지에 담고 박스을 동네에서 5개을 사가지고 와서 담아둔 상태엿다.그렇게 해서 1톤트럭 2대에 50만원이고 사다리차는 15만원이라고 했다.내가 25톤이라고 이야기햇는데 방문견적도 없이 사람을 보내서 1톤트럭 두대가 온것도 아니었다. 트럭 한대에 두명이 한 60대 후반이나 70대로 보이는 키가 작은 노인들이 왓다...



짐을 체크리스트도 없고 파손보험계약서도 없이 ....착한이사에서는 처음에 모바일폰으로 전화상으로 견적서을 보내왔는데 방문견적은 아니다. 인터넷상에서 보니 방문견적없이 이사을 진행하면 이사이후에 분쟁이 많이 생긴다고 나왓다.



접시라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지만 골동품이라고 생각하면 가격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외국인들이 오면 쓰던 것이지만 기념 품으로 척하니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부탄에서 유엔브이로 활동할때 UNDP에서일하던 핼랜이라는 친구는 나에게 말을 걸어올때 처음에 친구라고 부르며 자기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고려자기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그릇에 대해서 이야기을 하다가 나중에는 트래킹도 같이 하고 요가인지 에어로빅도 같이 하자고 해서 했다. 이 친구출장간 사이에 남자친구가 세이브칠드런에 부탄대표와 눈이 맞았다.아마 나중에 이여자분과 이야기을 해보니 나이든 여자의 여유가 좀 있었다.나보고 자신의 집에 초대해 차을 마시며 자기집에서 에어로빅을 같이 하자고 하는데 친구와의 의리상 같이 어울릴 수가 없었다.



처음에 내 친구 핼랜이 부탄 현지인 남자친구을 사귀면서 나을 데리고 같이 나가서 부탄에 산자락에 흙을 가지고 와서 그릇을 만든다고 했나 뭐라고 했다.



나중에 내가 좀 난처해?다. 그 것도 우리가 둘이 트레킹을 다녀오고 푼술링도 다녀오자 레모바에 부탄인들은 레즈비언이아니냐고 이야기을 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문화나 젊은이들이 여자끼리도 손잡고 다닌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는데 그들은 미국이나 싱가포르 영국.독일등에서 교육을 이상한 것을 보고 왓는지 참...



단지 우리는 그떼 또래 친구들이 많지가 않았는 것이다. 대부분 결혼해서 애기도 돌봐야 하고 가정살림에 바뼈서 방글라데시와는 좀 달랐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가족문화가 발달이 되어서 초대도 잘한다. 잘살건 못살건말이다.



정부에 돈이 없어서인지 서류가 보통 23개월은 사무실에 쌍여있는 것은 기본이라고 한다.집세가 밀려서 나도 몰랐다. 나중에 집주인이 이야기해서 알앗는데 가끔씩 초대도 해주어 식사도 하고 아줌마가 항상 웃으신다.키가 작았다.남편은 건설회사을 햇는데 키가 크시고...



왠지일지 부탄인들은 나보고 다른 곳으로 이사을 가라면서 이야기햇는데 나는 이년동안 그냥 살다가 왔다. 작은 집으로 옭기려다가 말이다. 다른 이유는 UNV오피스에서 자꾸 이런 저런일로 나에게 지방에서 누가 왓다고 전화도 해주고 해서 작은 집으로 가면 모임을 집에서 못할것도 같았다. 나는 모임을 위해서 태국산 전자밥통 10인용과 물2L인가을 끓이는 전기보일러 물통을삿었다.일본전자회사와 태국회사 합자 회사제품이었다.한국에 올때 가져올까하다가 이시에게 팔았니 양친에게 팔았나 기억이 안난다.그리고 항아리 대신에 하얀 프라스틱 통도 이시인가 누군가에게 파았다. 동치미을 담아서 먹었는데 ...



요새는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내가 낸 아이디어가 선거에 사용되면 누가 이기든 나에게는 득될것이 없다. 이긴자는 이긴자대로 진자는 진자대로.....어디로 갈거나 김영동의 노래가...



딸을 공부을 시킬것인가돈이나 벌어 좋은 아니 돈있는 여자 쫓아다니는 남자을 만나라고 할까부탄에서 프랑스에게 나에게 식사 초대헤 밥도 만들고 했는데 프랑스여자는 비행기타고 부탄으로 날아왔다. 나는 그 프랑스남자애 이름도 잊어버렸다. 유럽인들은 참 정열적인가 보다.그런 만큼 이혼도 잘 해서 결혼을 여러번 한다. 한국은 아직은 ...여자가 혼자 살면서 성공하기란 연애인이나 식당외에는 힘이 든다....



우크라이나는 과걱에 유럽에 대리모의 성지였다고 한다. 아마 풍부한 농산물이 생산이 되서 일지도...우크라이나 전쟁이후에 조지아로 옮겨갓다고 한다. 오늘은 이런 생각도 한다. 그러지 말고 따스한 지역에 신혼부부들이 살 수있는 신시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방글라데시에서 이야기을 들으니 한국인들이 방글라데시에 와서 애기을 많이 낳는다고 햇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노산이나 애기도 따스한 지역에서 온도가 올라가 병도 덜생기고 여성의 몸이 따스해져 정자가 난자에 착상이 잘되는 것은 아닌가



유럽이 카톨릭과 기독교을 믿는다고 하지만 씨족사회나 그 족장들의 씨앗을 받으면 그 씨앗을 위해서 서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고 햇다



학교 다닐대 일본 여자들은 전쟁이후에 일본에 배가 들어오면 서로 배에 갓다고 한다.우리가 원시시대로 돌아간다면 우리가 사람의 눈만으로 그사람을 읽을 수가 없다. 몸씨움이다. 여자는 약해서 남자들이 싸움상대로 치지 않으니 제3세계에서는 여자가 부정을 탄다고 생각을 하고 여자을 제켜두는 것 같다. 너무 나대면 좋아하지 않는다.



차지만 우리나라 속담에는 장닭이 울리 않으면 암닭이 지붕에 올라가서 울어야 한다고 한다.



태평동 유등마을과 푸르뫼 아파트에서 애들이 전학을 가고 떠나면서 희영이보고 지키라고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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